2012-10-22
디지털시대에 행동하는 시민 발굴하기
인터넷 한국의 10가지 쟁점(이하 ‘10가지 쟁점’이라 합니다.)과 우리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로 간다(이하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라 합니다)을 통해서 정보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쟁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혹은 친밀한) 키워드로 여겨진 것이 인터넷 담론 공중이다. 이들은 네트워크 안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사회에서도 변화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다. 이하에서는 정보사회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이해되는지 먼저 생각을 정리해보고 그 바탕에 인터넷 담론 공중에 대해 살펴보면서, 어떠한 요건이 이렇게 참여적인 시민을 만들어내는지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1. 네트워크를 대하는 우리의 변화
1.1. 과거의 인식
‘10가지 쟁점’이 2002년에 엮어진 글이다보니, 그 글을 쓴 저자의 통찰력과는 무관하게 인터넷 문화 경험이 부족하여 ‘타자성’에 대하여 지금의 문화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의 인터넷문화 경험이 부족하여, 당시 인터넷은 ‘한계’내지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 무질서한 공간으로 비추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인식의 중심은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국가적인 규범이나 사회적인 통제 ‘밖에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활동한다는 인식이다. 다만 그 자유로움에서 나타나는 행동양식 등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안’에 내재하고 있던 코드가 표출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때에는 사이버공간이 갖는 현실적인 영향력을 미친 역사적인 경험이 없었고, 인터넷 문화는 PC방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독특한 문화적 공간에 하나로 여긴 인식이 드러나 있다(10가지 쟁점, pp. 13~16).
그리고 정치현상과 관련하여, 직접 민주주의 발달 가능성의 기대만큼은 충분히 컸다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들은 비지역화된 공간에서 정보를 취합하고, 다른 관점들을 종합하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적 소통을 통해 우리의 인식을 증대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그 인식에 근거한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를 기대섞인 우려로 바라보았다. 즉 1) 현실 공간과의 상호작용이 전제되어야 하고, 2) 현실의 문제 (비판)의식이 현실 공간과 사이버 공간에서 동시에 담론으로 구성될 수 있어야 하며, 3) 참여자들이 정보 생산자로서 의제 설정의 권한과 그에 상응하는 인터넷 시대의 시민적 책임을 확대하면, 인터넷 시대의 참여 민주주의를 이룩할 것이라는 점이다(10가지 쟁점, pp. 180~188). 대표성의 이질화를 극복하면서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면 직접 민주주의가 증대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1.2. 독백에서 담론 공중으로
인터넷이 참여 민주주의의 실현공간이 될 수 있었던 조건으로 매개된 공공성을 든다. 지역화되지 않은 공간, 대화적 공간으로의 전환, 개방형 공간, 그리고 현존하지 않는 생산자와 수용자의 다원화된 공간에서 인터넷은 고대 그리스의 면대면 접촉대신 매개하여 공공성을 창출한다는 것이다(10가지 쟁점, pp, 181~182). 인터넷 블로거들이 포스팅하는 글이나, 트위터에 올라온 140자는 기존 미디어들이 일방향으로 독자들에게 흘러간 것과 달리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작동하면서(매개하면서) 공공성을 창출한다. 미디어의 독백이 아닌 생산자이자 수용자인 네티즌들에 의해 담론이 형성되는 것이다.
매개된 공공성 또는 담론 형성의 경험을 우리 사회는 많이 축적하고 있다. 마이크로 소사이어티에 소개되는 황우석 교수의 난자 사진 조작 관련 오보사건, 광주광역시 한 고등학교급식의 계란탕 사건 등이다. 한 네티즌이 <슈피겔>원문을 찾아서 번역기를 돌려서 올린 글은 독백으로 끝나지 않고, 이후 네티즌들의 댓글을 통해 마치 그리스로마 광장에서 시민들이 직접 대화하듯이, 집단적 토의를 통해 진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계란탕 사건에서처럼 그 사안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여, 학교급식의 개선으로 이어졌다.
인터넷을 통해 기존의 미디어들이 일방향으로 제공하는 정보를 수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공적 사안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갖춘 안목있는 네티즌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른바 비판적 담론 공중이다. 다양한 정보원을 찾아다니며 의견을 청취하고, 필요하면 자신의 주장을 과감하게 전개하는 등 활발한 담론적 참여를 통해 한국 사회의 권력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마이크로 소사이어티, pp. 241~270).
1.3. 담론 공중에서 참여하는 시민으로
2012년의 관점에서 이러한 담론 공중을 바라볼 때, 그 영향력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에 예를 든 사례보다 더욱 기억해야 할 사례가 있다. 소금꽃 나무 김진숙과 희망버스이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로 촉발된 노동계의 전면파업에 노사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하기 위해, 고공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 지도위원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추운 한 겨울인 1월에 크레인을 올라간 김진숙 지도위원이 그 고공 크레인에서 태양열로 충전해가며 사용한 스마트폰으로 전한 140자는 독백으로 끝나지 않고, 수많은 리트윗으로 이어져, 한진중공업사태에 대한 담론 공중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자발적 제안으로 희망버스가 기획되고, 리트윗하던 담론 공중은 스마트폰에서만 머물지 않고, 직접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한진중공업 현장으로 달려갔다.
인터넷 담론 공중에 의해 만들어진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담론에만 머물지 않고, ‘참여’로 이어진 것이다. 이 참여는 반복 확대 재생산되면서, 인터넷의 비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희망버스에 참가하는 사람은 수도권이나 부산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러한 시민들의 ‘참여’는 정치권을 직접 움직이게 만들어 국회 청문회를 열게 하고, 여론의 비판적 견해를 의식한 여야 정치인들은 한 목소리로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을 질타하였다.
무엇보다 인터넷 담론 공중에 의해 이 사건이 주목되면서, 단순히 고공농성 자체에만 주목한 것이 아니라, 대화적 공간을 형성한 트위터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이 사실을 접하게 되고 그 소통과 대화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정리해고의 부당성이라는 문제의 본질에 공중(公衆)이 주목한 사례이다. 담론 공중이 존재하면서 공적 사안에 대한 다양한 입장과 시각이 제시되고 그 과정에서 비판적 안목을 갖게된 시민들이 희망버스라는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일반 시민은 이미 정리된 담론을 취사선택하면서(읽으면서) 재생산(리트윗)하고 결국 희망버스에 오르는 참가자가 된 것이다.
‘10가지 쟁점’에서는 네트워크의 ‘타자성’을 언급하며, 사이버공간과 현실공간의 괴리를 걱정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네트워크를 통한 담론 공간에서 어느 한 쪽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두 공간을 직접 연결해내며 현실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낸 역사적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만들어낸 인터넷이 갖는 매개된 공공성이 잘 발현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2. 독점이 아닌 공유와 협동
가. 시민적 덕성을 네트워크 안에서 찾을 수 있을까
마이크로 소사이어티에서는 인터넷 담론 공중이 이성적 공중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마이크로 소사이어티, pp. 274~276). 인터넷 담론 공중이 합리적 판단 능력을 갖추고 동시에 ‘상호성’, ‘관용’, ‘절차성’, ‘협동 의지’ 등을 지니고서 시민적 덕성을 발휘하는 공중으로 진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그러면서 실려있는 인터뷰는 한 파워블로거와 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마이크로 소사이어티가 제시한 인터넷 담론에 관하여 아쉬움이 매우 크다.
공동체의 미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결정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구성원의 판단을 모아서 그 구성원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존듀이의 공동체 자결의 원리가 있다. 시민적 덕성이 발휘한다는 것은 인터넷 담론이 인터넷에서 끝나면 안되고 사회(인간 현실)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마이크로 소사이어티에서 권력의 변화를 인터넷 담론 공중에 있음을 결론 내리고서, 한 명의 파워블로거와의 인터뷰가 아닌 보다더 담론적인 의미의 인물의 인터뷰가 아닌 점이 매우 아쉬웠다.
나. 담론 공중(discursive publics) 육성하기
인터넷을 통한 담론의 형성이 고대 로마그리스 시대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표현하였지만 결국 논의를 인터넷 안에서만 찾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민적 덕성은 인터넷이란 기술적인 도구 안에서의 탐구로는 찾을 수 없다. 시민적 덕성은 정치와 교육 과정에서의 사회화 경험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체득하는 것이지, 인터넷 기술 발달이나 새로운 미디어가 담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인터넷 담론 공중의 장점이 사이버 공간과 현실 공간 모두에서 영향력을 갖는 비판적 공중이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자체에 대한 고민과 물음을 던지지 않은 점이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크로 소사이어티에서는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는 ‘비판적 담론 공중’에 대하여 주목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공적 정보를 습득하고, 토론하며, 새로운 공동체 경험을 한 개인들은 새로운 ‘담론 공중discursive publics’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이 공중은 기존의 국민, 사민 등의 주체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 집합적 주체라고 한다. 이들은 개인이 속한 공동체에 개별적으로 해결할 수 없거나 해결하기 어려운 ‘공동의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관심을 표명하고, 논의와 결정에 참여하는 주체이다.
관계 지향적 미디어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 사회에는 담론 공중이 형성되고 있는 것은 마이크로 소사이어티에서 본 바와 같다. 주류 언론이 제시하는 의견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논평하며 댓글을 다는 인터넷 이용자들, 정부와 정당의 주장을 검토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토론하는 인터넷 이용자들의 특징은 정보의 공유와 협동을 통해서 이루는 것이다. 그런 현상을 주도하는 가치는 마이크로 소사이어티에서도 진단한 바 있는 ‘상호성’, ‘관용’, ‘절차성’, ‘협동 의지’ 등 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는 인터넷 고유의 특성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사회인문적인 가치, 즉 현실 공간에서의 가치이다. 마이크로 소사이어티를 이루어가는 인터넷이라는 도구 문화가 제공해줄 수 없는 가치임을 기억하고, 역사 이래 민주주의와 인문의 발전을 위하여 계속해온 고민과 교육이 앞으로도 중요함을 의미한다고 본다. 다만 학교(네트워크 밖)에서 그러한 가치를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공간 안(네트워크 안)에서도 그러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 담론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의제설정 - Trans Humans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사회는 인터넷 담론 공중이 참여하는 시민으로까지 이어지는 좋은 역사적인 경험을 한 바가 있다. 그러면 그러한 참여하는 시민으로 인터넷 이용자들이 바뀌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생각해볼 때, 나.항에서 인문사회적 교양을 네트워크 안과 밖에서 쌓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정리했다.
하루에도 다음 아고라 등 게시판에는 수많은 의제들이 제안된다. 그렇지만 담론을 형성하고 공중이 모여지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인문사회적 교양을 가진 개인(individual)들이 공중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의제 발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Jacques Attali가 「미래의 물결」에서 제시한 “Trans Humans" 개념이 담론의 대상이 되는 의제를 제시한다고 생각한다. 미래학자인 그는 앞으로의 세계에서 관계지향적인 Trans Humans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보았다. 즉 카터재단이나 세계환경기금, 정당이나 노동조합 등이 세계를 바꿔나가고 영향력을 끼치는 그룹이 될 것인데 이들 단체는 관계지향적일 수 밖에 없다. 특히 그러한 단체를 주도하는 사람은 자기 이익에만 골돌하는 자가 아니라 이웃의 이익과 권리를 고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이타적인 시민일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적절한 담론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의제가 설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의제가 설정되기 위해서는 결국 사회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결코 네트워크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논리로는 인터넷 담론 공중이 발생할 수도 없고 이해될 수도 없는 것이다.
3. 디지털 시대에 아나로그 시민 찾기
이 글의 서두에 ‘10가지 쟁점’은 네트워크의 타자성의 경험이 적어, 인터넷 공간을 무질서한 공간으로만 인식한 점은 한계였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인터넷 담론의 변화를 이야기 하면서 다시 회귀하는 문제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네트워크 안과 밖 모두를 아우르는 의제 설정이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 ‘10가지 쟁점’은 혜안을 제시하고 있다. ‘인터넷 문화를 우리 사회 ‘밖’의 코드로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 사회 ‘안’의 코드로, 우리 사회의 문화적 범주이자 문제의 노출로서 생각’하는 것이다. 인터넷 담론은 어디까지나 공동체에 관심있는 시민들이 이용하는 도구의 하나이므로, 이것을 잘 활용하는 방법과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은 시민적 덕성을 되찾고,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상호성’, ‘관용’, ‘절차성’, ‘협동 의지’ 등 아나로그 시대 시민의 덕성을 강조하고 되찾아 나가다 보면, 그 모습이 자연스레 인터넷 담론의 발전을 이끌 것이다. 공동체의 발전을 바라는 시민들의 의식 가운데에 관계적 매체를 이용하여 스몰 토크 등을 활발히 해나가는 과정이 자연히 하워드가 「참여군중」에서 강조하는 “인공적인 공동재산”인 인터넷 등 네트워크를 끊임없는 “혁신의 공유지”로 만드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서 인터넷 담론 개선은 ‘아나로그적인 시민’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시민의 발굴은 사회공동체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의제설정과 시민 덕성을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네트워크 안팎에서 교육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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